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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은 어디에서 시작될까? 현대자동차그룹은 연구원의 손끝에서 혁신이 시작된다고 믿는다. 양산에 성공한 기술만이 아닌, 새로운 도전 자체가 미래의 문을 여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1994년 현대차가 개발한 태양광 자동차 ‘솔라카’는 양산으로 이어지진 못했지만 미래를 실험하는 용기를 남겼다.
또한 2013 아이디어 페스티벌에서 선보인 주차 로봇은 당시에는 먼 미래의 이야기처럼 보였지만, 지금은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를 비롯한 여러 생산기지에서 유용한 제조 설비 중 하나로 활약하고 있다. 2021 아이디어 페스티벌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다기능 콘솔’도 5세대 싼타페의 ‘양방향 멀티 콘솔’로 양산돼 고객의 일상을 더욱 편리하게 만들고 있다.
이처럼 현대차그룹의 연구원들은 미래를 향한 도전을 거듭한다. 그런 의미에서 올해로 17회째를 맞은 ‘아이디어 페스티벌’은 이런 도전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는 무대다. 단순히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전폭적인 지원 아래 아이디어를 실물로 구현할 수 있어서다. 아이디어 페스티벌이 처음 열린 2010년부터 지난 16년간 155개의 아이디어가 본선에 올랐다. 주최 측은 이와 같은 아이디어들이 모여 현대차그룹의 내일을 조금씩 만들어왔다고 자부한다. 2026 아이디어 페스티벌의 주제를 ‘혁신의 기원(The Origin of Next)’으로 정한 배경이다. 여기에는 현대차·기아 남양기술연구소 준공 30주년을 기념하는 의미뿐 아니라, 선배 연구원들의 도전 정신을 이어받고, 세상을 바꿀 미래의 씨앗이 탄생하길 바라는 마음을 담고 있다.
이번 아이디어 페스티벌은 4월 16일부터 5월 18일까지 공모를 받았으며 총 130건의 아이디어가 접수됐다. 이후 서류심사로 상위 20개 팀을 가렸고, 다시 PT 심사를 통해 본선 진출 6개 팀이 정해졌다. 6개 팀은 4개월간 아이디어를 프로토타입으로 구현했고, 9월 8일 열린 중간 워크숍에서 진행 상황을 점검받았다. 이어서 10월 19일에는 대망의 본선이 열렸다.
우수상 - 상용차 운전자의 일상을 가족과 공유하는 ‘히어로 레코더’
무대에 오른 진출자들의 얼굴에는 자부심이 가득했다. 먼저, 상용통합제어개발팀 안치영 책임연구원과 상용열에너지설계팀 이상호 책임연구원으로 구성된 ‘아이캔두디스올데이팀’은 하루 8~11시간을 차에서 홀로 보내는 상용차 운전자들에 주목했다. 차량 실내에 장착되어 운전자의 졸음과 부주의를 경고하는 카메라로 운전자의 하루를 담고, 가족과 공유할 수 있는 기능을 더한 ‘히어로 레코더(Hero Recorder)’를 선보였다.
히어로 레코더는 하루 운행을 마치고 시동을 끈 뒤부터 본격적으로 작동한다. AI가 하루의 영상 중 운전자의 표정 변화와 감정을 확인해 의미 있는 순간 여럿을 추린 뒤, 이를 한 편의 이야기로 엮어낸다. 서사를 설계하고, 하루에 어울리는 문장을 쓰고, 여기에 맞는 자막과 음악까지 입혀 1분짜리 영상을 완성한다. 영상은 차량 디스플레이에서 바로 재생할 수 있고, 스마트폰 앱으로 전송해 가족과 공유할 수도 있다.
히어로 레코더 제작에서의 관건은 소프트웨어였다. 안치영 책임연구원과 이상호 책임연구원은 “장면을 고르는 기준과 편집의 분위기가 기술만큼 중요하다는 점을 배웠다”고 말했다. 고단한 하루를 위로하는 순간을 만들기 위해서는 사람만큼 섬세한 AI의 영상 편집이 필요했다는 의미다. 안치영 책임연구원은 “가족들과 방 한편에서 따뜻하게 웃으며 볼 수 있는 영상을 만들 수 있어 좋았다”고 밝혔고, 이상호 책임연구원은 “사람을 위로하는 따뜻한 기술을 만들 수 있어 보람 있었다”고 이야기했다.
우수상 - 차에서 유모차까지 아이의 이동을 케어하는 ‘늘봄’
아이와 함께 외출할 때는 신경 쓸 게 많다. 특히 혼자 아이를 태우고 운전할 경우 뒷좌석의 아이가 걱정돼도 고개를 돌리기 어렵다. 잠깐의 시선 이탈도 아찔한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걸을 때도 뒤에서 다가온 킥보드가 바로 옆을 스쳐 지나가는 등 놀랄 일이 종종 생긴다. 자율주행판단개발1팀의 최수영, 이건창, 이승준 책임연구원과 이홍규 연구원이 힘을 합친 ‘늘봄팀’은 이런 경험에 주목했다. 팀원 중 3명이 어린 자녀를 키우는 부모이기 때문이다.
팀명이자 아이디어명인 ‘늘봄’은 ‘늘 본다’와 ‘돌봄’을 합친 말이다. 늘봄은 영유아 모니터링 허브로 자동차와 유모차에 장착해 사용한다. 이는 손바닥만 한 크기에 카메라와 센서, 제어기, 배터리로 구성됐다. 자동차 실내에 붙이면 아이의 눈과 자세를 분석하고 수면 여부, 이상 징후 등을 실내 디스플레이를 통해 알린다. 또한 유모차에 장착하면 자전거, 킥보드 등의 접근 경고는 물론 인도 이탈, 차도 진입 등을 판단해 스마트폰으로 알림을 보낸다.
여기에는 팀원들의 개발 분야인 자율주행 인지·판단 기술이 동원됐다. 운전자를 지키는 인지 기술을 아이에게 적용한 것이다. 늘봄팀은 크기, 무게, 컴퓨팅 사양, 소프트웨어 성능 등의 최적점을 찾기 위해 시행착오를 거듭했지만, 소프트웨어, 하드웨어, UX/UI 등 개발을 나눠 맡고 소통하면서 완성했다고 강조했다. 늘봄팀은 “앞으로 휠체어와 킥보드 등 모든 이동 수단에서 또 하나의 눈이 되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우수상 - 여러 연령대 카시트로 변화하는 ‘핀프린트시트’
영유아 카시트와 어린이 카시트는 아이의 성장에 맞춰 교체하는 제품이다. 그러나 여러 차례 카시트를 구하고 처분하는 것은 번거로운 일로 다가온다. 차체선행생기1팀 홍기준·고원석 책임매니저, 오하림·손예람 매니저로 이뤄진 ‘바디가드팀’은 아이의 체형에 맞게 변화하는 자동차 시트 아이디어를 냈다. 이들이 선보인 ‘핀프린트시트(PinPrintSeat)’는 수많은 핀이 물체의 형태를 본뜨는 장난감 ‘핀아트’에서 착안했다.
핀프린트시트는 착좌부에 마련된 총 78개의 액추에이터가 탑승자 체형에 맞춰 방석 높낮이와 등받이 깊이를 조절하는 기능이 특징이다. 각 액추에이터는 홀 센서 피드백으로 위치를 정밀하게 제어하며, 끝에는 부드러운 촉감의 쿠션캡(TPU 소재)을 씌워 편안한 착좌감을 제공한다. 이번 무대에서는 1세, 3세, 6세, 성인 등 4가지 모드별 기능을 시연했다.
바디가드팀은 “7년째 아이디어 페스티벌에 도전한 끝에 본선 무대에 처음 올랐다”며 “일상에서 발견한 작은 불편에서 시작한 질문이 하나의 시트로 완성되기까지 모두의 진심이 담겼다”고 말했다. 사실 바디가드팀에게 시트 설계는 처음이었다. 여러 자문을 통해 3D 설계의 완성도를 높였고, 회로와 제어 로직은 바이브 코딩으로 해결했다. 또한 연구소 내 여러 부문으로부터 도움을 받아 스캔용 샘플과 시험 차량을 확보했다. 바디가드팀은 해당 기술이 PBV와 자율주행 셔틀, 노인·장애인 맞춤 시트, 나아가 미래 모빌리티의 실내 공간으로 확장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최우수상 - 시각장애인의 안전한 보행을 돕는 스마트 안경 ‘아이브릿지’
시각장애인에게 보행 시 전방 정보의 유무는 공포와 자유를 가르는 요소다. 로보틱스사업2팀 김지한, 진우종 책임연구원, 모바일로봇SW개발팀 장현준 책임연구원과 강충혁 연구원이 모인 ‘T4B팀’은 가이드 러너 봉사 활동을 하며 전방 정보 없이 길을 나서는 시각장애인의 두려움을 가까이서 지켜본 경험이 있다. 가령 시각장애가 있는 택시 승객이 목적지 앞까지 도착하더라도, 차에서 내린 순간부터 건물 입구까지는 혼자 걸어야 한다. 이들은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라스트마일 운송수단에서 내린 시각장애인의 마지막 걸음까지 함께할 방안을 고민했다.
T4B팀이 개발한 ‘아이브릿지(Eye-Bridge)’는 로봇의 자율주행 기술을 응용해 시각장애인에게 보행 정보를 안내하는 스마트 안경 솔루션이다. 안경에 장착된 카메라와 라이다 센서를 통해 경사, 장애물, 노면 상태 등 주변 환경과 진행 방향을 인식하면, 스마트폰에 탑재된 앱이 위험 요소를 판단하고 장애물 위치와 최적 보행 경로를 알려준다. “왼쪽 턱을 주의하세요”, “3초 후 건너세요” 등 보행 정보를 음성과 진동으로 전달한다.
여기에는 현대차그룹의 모빌리티 로봇 플랫폼 모베드(MobED)로 검증한 낭떠러지·장애물·계단 감지 알고리즘이 쓰였다. 로보틱스 기술을 사람의 보행 정보를 안내하는 새로운 영역에 활용한 것이다. 이는 로봇을 개발하던 T4B팀에게는 새로운 도전이었지만, 기술 완성도를 하나씩 높여가며 자신감을 얻었다. 이들은 여러 센서에 알고리즘을 적용하며 최적의 기술 방안을 찾았고, 수많은 수정을 거듭한 끝에 시제품을 완성했다. T4B팀은 로보택시의 내비게이션과 해당 기술이 융합해 차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보행 안내가 자연스럽게 시작되는 미래를 기대한다.
최우수상 - 실내 조명과 디스플레이로 멀미 증상을 개선하는 ‘멀미 제로’
멀미 때문에 여행은 물론, 가까운 곳으로 이동하는 것마저 어려운 이들이 적지 않다. 내구기술팀 최성욱 글로벌R&D마스터와 김병수·문호성 책임연구원, MSV바디시험팀 오성민 연구원으로 구성된 ‘컴포트 드라이브팀’은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자료에 따르면 국내 성인의 33%, 어린이의 58%가 차멀미를 경험한다”며 ‘멀미 제로’의 개발 배경을 밝혔다. 이들은 멀미의 핵심 원인인 ‘감각 충돌’에 집중했다. 이는 차창 밖 풍경(시각 정보)과 귓속 전정기관이 느끼는 차의 움직임이 불일치함에 따라 발생하는 불편함을 말한다.
멀미 제로는 자동차에 탑재된 조향각 센서와 가속도 센서를 연동한 세 가지 기능을 하나로 묶은 패키지다. 첫 번째는 앰비언트 라이트로, 주행 방향과 동일하게 순차 점등하듯 작동해 차의 움직임을 표현한다. 두 번째는 뒷좌석 모니터 영상으로, 주행 방향에 맞춰 화면 테두리에 주행 물결을 띄운다. 세 번째는 가속도 정보를 멀미 유발 지수로 환산해 계기판에 표시함으로써 운전자가 부드럽게 주행하도록 유도하는 기능이다. 이는 양산차에 이미 적용된 앰비언트 라이트와 주행 관련 센서를 활용하기에 별도의 하드웨어 추가 없이 구현할 수 있다는 게 강점이다.
컴포트 드라이브팀은 개발 과정에서 실차 데이터를 반복 측정하며 임계값과 반응 속도를 세밀하게 다듬었다. 12회에 걸친 실험에서 참가자 26명 중 22명(84.6%)이 멀미 증상이 개선됐다고 응답했다. 이에 대해 컴포트 드라이브팀은 “정교한 데이터도 결국 반복 실험을 거쳐야 실제 편안함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배운 시간이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대상 – 적재공간 극대화 솔루션 ‘트라이폴드 러기지보드’
SUV의 러기지보드를 들추면 하단 공간을 추가로 확보할 수 있다. 그러나 크고 높은 짐을 싣기 위해 이를 활용할 때는 분리한 러기지보드를 차량 내부가 아닌 별도 장소에 보관하는 일이 발생한다. MSV내장설계2팀 윤진석, 윤호영, 박종민 책임연구원과 조광래 파트장이 모인 M.S.V.2팀은 이런 불편함을 해소한 ‘트라이폴드 러기지보드’를 개발했다.
이는 러기지보드를 앞으로 밀어 2열 시트 등받이 뒤편에 3단으로 접어 고정하는 아이디어다. 주행 중 펼쳐지지 않도록 잠금 구조로 단단히 고정되며, 필요할 때 해제 버튼을 눌러 간단히 펼칠 수 있다. 또한 러기지보드를 뒤쪽으로 잡아당기면, 보조 테이블로도 활용 가능하다.
여러 기능이 서로 간섭하지 않도록 개발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M.S.V.2팀은 앞으로 밀었을 때 쉽게 접히고, 뒤로 당기면 편리하게 슬라이딩되는 구조로 만들기 위해 목업을 여러 차례 만들고 부수며 치수와 힌지 위치를 조정했다. 조광래 파트장은 “1mm의 차이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됐다”고 밝혔다. M.S.V.2팀은 향후 AI 모션 인식 기술로 짐의 크기를 파악해 러기지보드를 스스로 접는 스마트 적재 시스템을 구상하고 있다.
고객의 일상 속으로 들어올 다음 혁신을 기대하며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연구원들의 일상 속 질문이 도전적인 개발 정신과 만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가고 있다. 올해 아이디어 페스티벌 무대에 오른 6개 팀의 도전 역시 다음 혁신의 기원이 되고 있다. 실제로 과거 수상작들은 이미 고객 곁으로 다가가고 있다. 시각장애인의 버스 탑승을 돕는 2023 아이디어 페스티벌 대상 수상작 ‘데이지(Day-Easy)’가 대표적이다. 현재 데이지의 기술은 LG유플러스와 협업을 통해 실증 시험을 진행하며 사회 공헌 기술로 거듭나는 중이다. 또한 2025 아이디어 페스티벌 최우수상 수상작 ‘트레일러 견인 성능 향상 소프트웨어’는 북미와 유럽 시장에 판매하는 SUV 차종에 탑재된다.
한편 올해 현대차·기아는 소프트웨어 혁신 문화 정착과 AI 전환 가속을 위해 아이디어 페스티벌의 하위 프로그램으로 플레오스 커넥트(Pleos Connect) 앱 개발 아이디어를 주제로 한 사내 해커톤 ‘24시간 코드 레이스(24H Code Race)’를 신설했다. 지난 7월 6일부터 20일까지 총 221개 팀이 응모했고, 이 중 상위 25개 팀이 본선에 진출했다. 8월 20일부터 21일까지 24시간 동안 진행된 본선에서는 25개 팀들이 아이디어를 실제 앱으로 완성하며 대결을 펼쳤다. 그 결과 아동의 반응에 맞춰 내용이 변화하는 반응형 오디오 동화 앱 ‘테일싱크(TaleSync)’가 대상을 수상했다.
이번 아이디어 페스티벌에 참석한 차량개발1담당 이재규 전무는 “아이디어 페스티벌은 현대차·기아가 모빌리티의 혁신을 거듭할 수 있었던 출발점이 되었다. 앞으로도 미래 모빌리티 시장을 이끌어갈 수 있도록 연구개발 문화에 혁신을 더해가겠다”고 밝혔다. 현대차그룹은 임직원들의 창의성과 실행력을 바탕으로, 고객의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드는 모빌리티 기술 개발을 이어갈 예정이다.
사진. 조혁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