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C 남미 라운드의 두 번째 경기인 칠레 랠리는 2000년 시작된 칠레 국내 랠리 시리즈 ‘랠리모빌(RallyMobil)’을 모체로 성장했다. 개최지는 칠레 중남부 비오비오(Biobío)주의 주도이자 칠레 제2의 도시인 콘셉시온(Concepción)이다. 경기는 태평양과 비오비오강 사이에 자리한 울창한 숲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칠레 랠리는 2019년 처음 WRC를 성공적으로 개최했지만, 이듬해 대규모 시위와 개헌 국민투표 등 극심한 사회적 혼란이 이어지면서 대회가 취소됐다. 이후 코로나19 팬데믹까지 겹치면서 WRC 무대에서 오랜 공백기를 보내야 했다. 그리고 2023년, 마침내 4년 만에 WRC 캘린더에 복귀하며 팬들이 기다려온 랠리를 다시 선보였다.
칠레 랠리의 스테이지는 울창한 숲과 험준한 구릉지대를 가로지르는 빠르고 기술적인 그래블 코스로 구성된다. 노면은 비교적 단단하고 매끄러운 편이지만, 곳곳에 거친 구간이 섞여 있어 높은 수준의 정확성과 집중력이 요구된다. 특히 임업이 발달한 비오비오 지역의 특성상 스테이지 상당수가 사유림을 통과한다. 바다와 가까운 숲이라는 지리적 특성 때문에 이른 시간에는 안개가 자주 발생하고, 울창한 나무 사이로 시야가 제한되는 경우도 많다. 정확한 페이스 노트와 빠른 판단이 중요한 이유다. 작은 실수 하나가 차량을 코스 밖 덤불 속으로 밀어낼 수도 있다. 빠른 속도감과 숲 사이를 따라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리듬감 있는 코스 특성 때문에 칠레 랠리는 핀란드나 웨일스 랠리와 비교되기도 한다.
한편, 앞선 파라과이 랠리에서 경기 내내 타이어 펑처와 박리 문제가 잇따르면서 FIA는 칠레 랠리를 앞두고 타이어 사용 규정을 한시적으로 완화했다. 통상 그래블 랠리에서 랠리1 클래스에 허용되는 타이어는 28개지만, 이번 칠레 랠리에서는 예외적으로 36개까지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현대 월드랠리팀(이하 현대팀)은 이번 칠레 랠리에 아드리안 포모(Adrien Fourmaux), 티에리 누빌(Thierry Neuville), 에사페카 라피(Esapekka Lappi)를 출전시켰다. 에스토니아에 이어 파라과이에서도 포디엄에 오르며 최근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는 포모는 파라과이에서의 좋은 성적을 발판으로 칠레에서도 경쟁력을 이어가겠다는 각오다.
“파라과이에서 매우 좋은 페이스를 보여줄 수 있어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칠레에서도 이런 흐름을 이어가고 싶어요. 제가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는 랠리이기도 합니다. 지난해에도 경쟁력 있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3위로 포디엄에 올랐죠. 칠레는 스테이지가 빠르고 리드미컬하면서도 상당히 기술적이기 때문에 높은 수준의 정확성이 필요합니다. 지난해에도 경쟁력이 있었고, 직전 파라과이에서도 우리 차가 좋은 성능을 보여줬습니다. 이번에도 선두권에서 싸우면서 최대한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이 목표입니다.”
반면 파라과이에서 초반 리타이어하며 아쉬움을 남긴 누빌은 칠레에서 분위기 반전을 노린다. 누빌에게 칠레는 희비가 엇갈린 기억이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는 칠레의 노면 특성이 파라과이와 크게 다른 만큼 타이어 관리가 중요한 변수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칠레는 파라과이와 상당히 다른 랠리입니다. 노면부터 차이가 큽니다. 파라과이가 단단하고 미끄러운 편이라면 칠레는 접지력이 훨씬 좋고 타이어 마모도 더 심합니다. 노면이 조금 더 거칠고 바퀴 자국도 많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출발 순서에 따라 타이어 선택이 까다로울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2019년에 큰 전복 사고를 당해 차가 심하게 파손된 기억이 있고, 2023년에는 포디엄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정말 극과 극의 경험을 했죠. 이번 목표는 우승입니다. 토요타가 매우 강력한 팀이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파라과이에서 우리 차가 얼마나 빠른지 이미 보여줬습니다. 속도만큼은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확신합니다.”
시즌 다섯 번째 랠리에 나서는 에사페카 라피는 아직 기대만큼의 성적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특히 자신의 홈 랠리인 핀란드를 비롯해 코스 특성이 비슷한 에스토니아에서도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 못했다. 칠레에서 다시 반등을 노리는 라피는 경기 자체를 즐기겠다는 각오를 밝히면서도, 자신의 목표에 대해서는 현실적인 페이스를 제시했다.
“칠레에서 다시 달릴 수 있어 정말 기쁩니다. 예전에 날씨가 상당히 까다로웠던 기억이 있어서 올해도 기상 조건이 변수가 될 것 같습니다. 특히 금요일 스테이지는 자갈길에서 코너를 공략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작은 실수 하나가 큰 시간 손실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집중력을 유지해야 하죠. 에스토니아와 핀란드 사이 정도의 페이스를 유지하면서 최대한 즐겁게 경기에 임하고 싶습니다. 좋은 성적을 거둬 팀에도 도움이 되고 싶어요. 결국 즐기지 못하면 좋은 결과도 따라오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현대팀 스포츠 디렉터 앤드류 휘틀리(Andrew Wheatley)는 파라과이에서 거둔 더블 포디엄을 칠레에서의 자신감으로 연결했다. 그는 “칠레 랠리에서 중요한 것은 순간적인 폭발력보다 꾸준한 페이스”라며 다음을 강조했다.
“파라과이에서 더블 포디엄을 거둔 덕분에 칠레에서도 같은 수준의 속도를 이어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칠레의 스테이지는 캠버와 고도 변화가 큰 중고속 그래블 코스입니다. 세 대 모두 충분히 경쟁력 있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칠레는 0.1초 차이로 선두가 계속 뒤바뀌는 랠리라기보다, 처음부터 끝까지 꾸준한 속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 대회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긍정적인 부분은 2026년형 i20 N 랠리1이 매우 안정적인 성능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입니다. 팀 전체가 에보 버전 개발을 위해 기울인 노력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경기에서 통산 10번째 제조사 챔피언 타이틀 획득을 눈앞에 두고 있는 토요타는 엘핀 에반스(Elfyn Evans), 올리버 솔베르그(Oliver Solberg), 다카모토 가츠타(Takamoto Katsuta), 세바스티앙 오지에(Sébastien Ogier), 사미 파야리(Sami Pajari)를 엔트리했다. 남은 3경기에서 얻을 수 있는 최대 포인트가 180점이기 때문에 현대팀과 173점 차이인 토요타는 7점 이상만 챙기면 자력으로 타이틀을 확정 지을 수 있다.
반면 드라이버 챔피언 타이틀은 팀 내 경쟁이 치열하다. 에반스가 여전히 포인트 선두이지만 파야리가 파죽의 3연승을 거두면서 에반스를 위협하고 있다. 둘의 점수 차이는 불과 20점. 에반스로서는 이번에 최대한 차이를 벌리지 못할 경우 최종전 마지막 스테이지까지 마음을 졸여야 하는 상황이다.
M-스포트 포드에서는 조쉬 맥켈런(Josh McErlean), 존 암스트롱(Jon Armstrong) 2명을 엔트리했다. 맥켈런은 지난해에 이어 칠레 2번째 도전이고 암스트롱은 칠레 데뷔전이다. WRC2에서는 톡스포트의 로버트 비르베스(Robert Virves)가 21점 차이로 루페 코르호넨(Roope Korhonen)을 리드하고 있다. 타이틀 경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챌린저스 타이틀의 경우 비르베스가 이번 경기에서 확정 지을 가능성이 높다.
올해 칠레 랠리는 전체 스테이지의 약 40%가 새롭게 개편됐다. 그중 가장 큰 변화를 거친 날이 9월 11일 금요일이었다. 투르키아(Turquía)를 시작으로 누에보 레레(Nuevo Rere), 우알키(Hualqui)까지 3개 스테이지를 오전과 오후에 각각 한 차례씩 반복하며 총 100.78km를 달렸다.
22.94km의 오프닝 스테이지 투르키아는 지난해 산 로센도(San Rosendo)를 기반으로 일부 구간을 새롭게 구성하고 주행 방향까지 반대로 바꿨다. 사실상 기존 데이터의 활용이 어려운 새로운 스테이지였다. 테스트 당시에는 노면이 건조했지만, 경기 직전 비가 내리면서 주행 환경도 완전히 달라졌다. 솔베르그가 오프닝 스테이지에서 가장 빠른 기록을 세웠고, 에반스와 포모, 누빌이 뒤를 이었다.
포모가 금요일 초반부터 앞서나가며 순위권 경쟁을 펼쳤다. 영상: WRC (https://www.wrc.com)
포모는 첫 스테이지의 까다로운 노면 상황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앞쪽 노면은 진흙탕이고 상당히 질퍽거립니다. 속도를 내기가 쉽지 않아요. 접지력 변화도 아주 심합니다. 가츠타가 길가에 멈춰 있는 것을 본 뒤에는 조금 속도를 줄였습니다. 상당히 까다로운 구간이었어요. 그래도 차에는 특별한 문제가 없으니, 이제 운전에만 집중하면 됩니다.”
SS2 누에보 레레에서는 에반스가 톱타임을 기록했다. 솔베르그와 오지에, 파야리 등 토요타 드라이버들도 빠른 페이스를 보여줬다. 반면 누빌은 좀처럼 차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했다. “계속 차가 흔들렸고 접지력도 일정하지 않았어요. 어떤 구간에서는 예상보다 접지력이 좋다가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갑자기 미끄러지기도 했습니다. 아직 긴 랠리가 남아 있으니 상황을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누빌과 포모가 까다로운 노면 조건에도 공세를 이어나갔다. 영상: WRC (https://www.wrc.com)
SS3 우알키 역시 진흙탕 노면이 이어졌다. 하지만 이번에는 누빌이 빠르게 반격했다. 이번 랠리 첫 스테이지 톱타임을 기록한 것이다. 누빌은 스테이지 직후 인터뷰에서 “노면이 울퉁불퉁할 때는 오히려 차를 훨씬 더 믿을 수 있습니다. 접지력이 좀 더 안정적이기 때문이죠. 반대로 노면이 미끄러우면 차가 이리저리 흔들리면서 제어하기가 어려워집니다”라고 답했다.
오전 세 스테이지를 마친 종합 순위에서는 솔베르그와 에반스가 치열한 선두 경쟁을 벌였고, 포모가 3위에 자리했다. 누빌은 오지에를 제치고 종합 4위까지 올라섰으며, 라피는 9위에 머물렀다.
점심 서비스 이후에는 오전에 달렸던 세 스테이지를 다시 한 번 주행했다. SS4 투르키아에서는 노면이 상당 부분 마르기 시작했지만 곳곳에는 여전히 진흙탕이 남아 있었고, 구간에 따라 접지력 변화도 컸다. 이번에는 파야리가 톱타임을 기록했고 오지에와 포모가 뒤를 이었다. 포모는 서비스에서 오전에 발생했던 차량 문제를 점검하고 다시 스테이지에 나섰다. 반면 누빌은 차량 밸런스 문제로 고전했다.
SS5 누에보 레레에서는 노면이 더욱 건조해지면서 흙먼지가 심하게 날렸다. 가장 먼저 코스를 달리는 에반스에게는 불리한 조건이 이어졌다. 오지에가 톱타임을 기록했고 파야리와 솔베르그가 뒤를 이었다. 종합 3위를 달리던 포모는 오지에의 거센 추격을 받으며 시차가 좁혀졌다. 한편 누빌은 오른쪽 뒷바퀴 댐퍼가 원인으로 추정되는 문제로 인해 고전 중이었다.
SS6 우알키에서는 솔베르그가 다시 톱타임을 기록했고, 포모가 뒤를 이었다. 금요일 일정을 모두 마친 시점에서 솔베르그가 종합 선두를 달렸고, 에반스가 2위에 자리했다. 포모는 오지에의 추격을 뿌리치고 종합 3위를 지켜냈다. 누빌은 종합 6위, 라피는 9위에 올랐다.
포모는 첫날의 경기 내용에 상당한 만족감을 드러냈다. “정말 믿기지 않을 정도로 좋았습니다. 이런 스테이지에서 이 차를 몰 수 있다는 건 정말 행복한 일이죠. 운전하는 것 자체가 너무 즐거웠습니다. 타이어 상태까지 고려하면 아주 좋은 스테이지였어요. 제가 할 수 있는 건 모두 쏟아부었습니다.”
한편 첫날부터 크고 작은 사고가 잇따르면서 최소 5명의 드라이버가 병원으로 이송돼 검진을 받았다. 이 가운데 일부는 예방 차원에서 입원했고, 골절로 수술을 받은 사례도 발생했다.
9월 12일 토요일은 펠룬(Pelún)을 시작으로 25.64km의 로타(Lota), 이번 랠리에서 가장 긴 28.31km의 마리아 라스 크루세스(María las Cruces)까지 중장거리 스테이지로 구성됐다. SS7부터 SS12까지 6개 스테이지의 총 주행거리는 139.2km에 달했다. 해안과 가까운 코스 특성상 아침과 오후 늦은 시간에는 짙은 안개가 끼어 시야를 가릴 수 있다. 드라이버들이 페이스 노트에 의지해 과감하게 스테이지를 공략해야 하는 이유다.
날씨가 맑아지면서 노면은 전날보다 한층 건조해졌다. 이에 따라 타이어 전략도 팀마다 달랐다. 현대팀 트리오는 소프트 타이어만 선택한 반면, 토요타 드라이버들은 하드 타이어를 두 개씩 챙겼다. 암스트롱은 하드 4개와 소프트 2개를 선택했다.
누빌이 토요일 첫 스테이지에서 전복 사고를 당하며 리타이어했다. 영상: WRC (https://www.wrc.com)
오프닝 스테이지인 SS7 펠룬은 기술적이고 구불구불한 오르막으로 시작해 저속과 중속 코너가 이어지는 구성이다. 이후 속도를 높이며 유려하게 이어지는 구간을 지나 8km 지점에서 숲을 벗어난다. 9.7km 지점의 까다로운 내리막 헤어핀을 통과하면 다시 구불구불한 구간이 이어지고, 후반부의 고속 구간을 지나 기술적인 코너에서 스테이지가 마무리된다.
오지에가 오프닝 스테이지에서 톱타임을 기록하며 종합 3위로 올라섰다. 포모가 2위를 차지했지만 오지에의 추격을 막아내지는 못했다. 반면 누빌은 8.3km 지점에서 전복 사고를 당하며 리타이어했다. 둑에 부딪힌 차량이 여러 차례 구르면서 크게 파손됐다.
누빌은 사고 당시 상황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요철 구간에 진입할 때 속도가 너무 빨랐습니다. 결국 접지력을 잃고 차가 바깥쪽으로 밀려나면서 전복됐어요. 다행히 다치지는 않았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순위를 만회하는 것이 목표였고, 잃을 것도 없었기 때문에 최대한 공격적으로 달렸습니다. 하지만 조금 지나쳤던 것 같아요.”
이어진 SS8 로타에서도 오지에와 포모가 나란히 1, 2위를 차지하며 종합 3위 자리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이어갔다. 하지만 이번에는 암스트롱이 11.7km 지점에서 전복 사고를 당했다. 다행히 차량은 계속 주행할 수 있었지만, 피니시 후 결국 리타이어했다. 누빌과 WRC2의 니콜라이 그리야진(Nikolay Gryazin)에 이어 이날 벌써 세 번째 전복 사고였다.
위험한 순간을 가까스로 넘기며 스테이지를 완주한 라피는 인터뷰에서 “차가 크게 미끄러진 뒤 계속 타이어 공기압 경고가 떠서 신경이 많이 쓰였습니다. 정말 크게 미끄러졌거든요. 그래도 다행히 실제로 펑처로 이어지지는 않았습니다”라고 이야기했다.
SS9 마리아 라스 크루세스는 오전 11시 5분에 시작됐다. 변경된 타이어 규정에 따라 이번 스테이지 직전에 추가 타이어 2개를 장착할 수 있었다. 28.31km로 이번 랠리에서 가장 긴 SS9는 기술적인 구간으로 시작해 긴 중속 코너들이 이어지며 특유의 리듬을 만들고, 9.65km 지점부터 다시 속도가 빨라진다. 21km 지점부터 피니시까지는 구불구불한 도로가 이어지며 중속 코너가 곳곳에 섞여 있다.
포모가 오지에를 크게 앞서며 종합 3위를 탈환했다. 영상: WRC (https://www.wrc.com)
이번에는 종합 선두 솔베르그가 가장 빠른 기록을 세웠고, 에반스와 포모가 뒤를 이었다. 포모는 오지에보다 빠르게 달리며 다시 종합 3위로 올라섰다. 포모는 경기 직후 밝은 표정으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컨디션이 정말 좋았습니다. 운전하기 좋은 스테이지였어요. 코너가 많아서 흐름도 좋았고, 차의 느낌도 정말 마음에 들었습니다. 자신감도 많이 생겼어요.”
30분간의 점심 서비스를 마친 뒤에는 오전에 달렸던 세 개의 스테이지를 다시 한 번 달렸다. 기온이 오르면서 타이어 부담도 커질 것으로 예상돼 대부분의 드라이버가 하드 타이어를 중심으로 구성했다. 포모와 가츠타만 하드 4개와 소프트 2개를 선택했다. SS10 펠룬에서는 오지에가 가장 빠른 기록을 세우며 포모를 앞섰다. 오지에는 다시 종합 3위로 올라섰다. 전날 종합 9위로 출발해 6위까지 순위를 끌어올린 라피가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가끔 차가 잘 따라주는 라인이 있습니다. 아침보다는 상황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놀라울 정도로 미끄러워요. 특히 내리막에서는 차를 제대로 세우기가 어려웠습니다. 마치 수막현상이 일어난 것처럼 미끄러졌어요.”
SS11에서도 오지에가 톱타임을 기록하며 포모와의 격차를 조금 더 벌렸다. 포모 역시 좋은 페이스를 유지했고, 경기 직후 자신의 주행에 만족감을 드러냈다.
“좋은 스테이지였습니다. 제 드라이빙과 페이스에도 꽤 만족해요. 시간을 조금 잃은 건 아쉽지만, 다음 스테이지에서 오지에를 따라잡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마지막 SS12에서는 솔베르그가 다시 한 번 톱타임을 기록하며 토요일을 종합 선두로 마쳤다. 에반스가 2위에 자리했고, 오지에가 뒤에서 에반스를 압박했다. 포모는 종합 4위로 토요일을 마쳤다. 라피는 종합 6위, 맥켈런은 7위에 올랐다.
9월 13일 일요일에는 기존의 라라케테(Laraquete) 대신 26.82km의 카람팡게(Carampangue) 스테이지가 새롭게 도입됐다. 카람팡게는 지난 5월 열린 아라우코 랠리에서 사용됐던 코스다. 여기에 8.78km의 비오비오 스테이지를 더해 두 구간을 각각 두 차례씩 주행했다. SS13부터 SS16까지 4개 스테이지의 총 주행거리는 71.2km였다.
일요일은 거의 27km에 달하는 장거리 스테이지를 두 차례나 달려야 하는 만큼 타이어 관리와 차량 손상 여부가 어느 때보다 중요했다. 누적된 데미지가 마지막 순간 치명적인 문제로 이어질 수도 있는 하루였다.
타이어 전략은 드라이버마다 달랐다. 포모는 소프트 4개와 하드 1개를 선택했고, 라피는 여기에 하드 타이어 1개를 추가했다. 토요타 드라이버 대부분은 소프트 타이어만 선택했으며, 에반스는 포모와 같은 구성을 택했다.
오프닝 스테이지인 SS13 카람팡게는 넓고 유려한 오르막으로 시작해 중저속 코너가 이어진다. 8.4km 지점부터 코스가 넓어지면서 14km 지점까지 비교적 빠른 속도를 유지한 뒤 내리막으로 전환된다. 15.6km 지점에서는 숲으로 접어들어 저속의 구불구불한 구간을 지나고, 마지막에는 다시 중고속 구간을 빠르게 통과하며 스테이지를 마무리한다. 오전 9시에 시작한 데다 해발고도가 900m에 가까워 기온은 5℃까지 떨어졌다.
포모는 타이어 부담이 가중되는 상황 속에서도 자신감을 잃지 않았다. 영상: WRC (https://www.wrc.com)
에반스가 오프닝 스테이지에서 가장 빠른 기록을 세웠고, 포모가 그 뒤를 이었다. 전날부터 이어진 오지에와 포모의 포디엄 경쟁도 일요일 아침부터 다시 뜨거워졌다. 게다가 포모는 오른쪽 뒷타이어가 손상된 상태로 주행해야 했다. 맥켈런은 오르막 구간에서 엔진이 꺼지면서 차량이 미끄러졌고, 이 과정에서 앞부분이 크게 파손됐다.
포모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마지막 5km에서 5초 정도 시간을 잃은 것 같습니다. 페이스가 정말 좋았는데 아쉽네요. 다른 선수들과 비슷한 페이스로 달리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오른쪽을 어딘가에 부딪혔습니다. 그 직후 경고등이 들어왔어요. 그래도 할 수 있는 건 다했습니다.”
이어진 SS14 비오비오는 사실상 파워 스테이지의 예행연습과 같은 구간이었다. 이번에는 종합 선두를 달리던 솔베르그가 타이어 펑처를 겪고도 가장 빠른 기록을 세웠고, 에반스와 오지에, 포모가 뒤를 이었다. 포모는 이 스테이지에서도 타이어 손상을 입었다. 왼쪽 뒷타이어가 림에서 빠져버렸지만, 다행히 차량을 몰고 피니시 라인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SS15 카람팡게에서는 오지에가 톱타임을 기록했다. 하지만 에반스가 타이어를 교체하기 위해 멈춰 서면서 선두권 순위가 크게 요동쳤다. 에반스가 종합 2위에서 5위로 밀려났고, 오지에가 2위, 포모가 3위로 올라서며 포디엄 경쟁의 판도가 바뀌었다.
포모는 이날 랠리의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솔직히 정말 정신없는 랠리였습니다. 어제는 펑처가 한 번도 나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였는데, 오늘은 이렇게 많은 펑처가 나오네요. 그래도 코스 자체는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이번 랠리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구간이었어요.”
마지막 SS16, 파워 스테이지가 시작됐다. 종합 선두를 달리던 솔베르그는 마지막 스테이지에서도 가장 빠른 기록을 세우며 칠레 랠리의 최종 우승을 차지했다. 오지에가 2위, 포모가 3위에 오르며 포디엄의 마지막 자리를 차지했다.
이번 결과로 토요타는 2026 시즌 제조사 챔피언 타이틀을 확정했다. 이로써 토요타는 란치아가 보유한 역대 최다 제조사 챔피언 기록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 드라이버 챔피언십에서는 에반스가 여전히 선두를 지키고 있지만, 파야리와의 격차는 17점까지 줄었다. 3위 솔베르그와의 차이도 21점에 불과해 시즌 막판까지 치열한 경쟁이 이어질 전망이다.
남미 라운드를 마무리한 현재 WRC 캘린더에는 10월 초 이탈리아 사르데냐와 11월 최종전 사우디아라비아만을 남겨두고 있다. 다가오는 이탈리아 랠리는 해안과 내륙 산악 지형을 넘나드는 거친 노면에 급격한 코너와 앞이 보이지 않는 언덕 구간이 이어져 타이어 접지력과 내구성을 시험받는 무대다. 특히 개최 시기를 기존 6월에서 10월로 변경하면서 경기 환경에도 큰 변화가 생길 전망이다.
글. 이수진 (자동차 평론가)
1991년 마니아를 위한 국산 자동차 잡지 <카비전> 탄생에 잔뜩 달아올라 열심히 편지를 보냈다가 덜컥 인연이 닿아 자동차 기자를 시작했다. <카비전>과 <자동차생활>에서 편집장과 편집 위원을 역임했고, 지금은 자동차 평론가로 활동 중이다. 전기차와 커넥티드카, 자율주행 기술 같은 최신 트렌드를 열심히 소개하면서도 속으로는 기름 냄새 풍기는 내연기관이 사라지지 않기를 기원하는 ‘자동차 덕후’이기도 하다.